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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란의 다도향기 10] 한국 찻사발, 바다를 건넌 문화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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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BCB포럼 조회 10회 작성일 26.07.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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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찻사발, 바다를 건넌 문화의 그릇


조선의 그릇은 ‘500년 K-컬처의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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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찻사발, 즉 다완(茶碗)은 차(茶)를 마시는 그릇을 넘어 한국의 미감과 생활 철학을 담은 문화유산이다. 둥근 형태 속 여백과 질박한 흙의 빛과 온기를 품은 다완은 조선 분청사기와 백자의 정점으로 꽃 피었으나, 그 뿌리는 통일신라(8~9세기) 시대 해상 교류에서 싹텄다. 바다의 길을 열었던 해상왕 장보고(張保皐)가 바로 그 흐름의 중심인물이다.

8~9세기 완도 청해진을 거점으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던 장보고의 해상 무역은 단순한 물자 교역을 넘어선 문화 교류의 성격을 지녔다. 특히 당나라 차의 중흥을 이끈 육우(陸羽)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인 『다경(茶經)』을 출간하면서 차는 기호음료로 널리 보급되었고, 귀족과 문인층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장보고는 차와 다기(茶器)를 신라에 도입하여 귀족과 승려층의 음다(飮茶) 풍습을 정착시키는 한편, 한·중·일 삼국 간 동아시아 차 문화 교류의 주요 매개자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중심지인 청해진을 통해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신라의 도공(陶工)들은 중국의 도자 기술을 받아들여 초기 다완(茶椀) 형식을 발전시켰다. 

특히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 사신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種子)를 들여올 때 장보고의 해상 네트워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때 지리산(현 경상남도 하동군 쌍계사 일대)에 심어진 차 씨앗이 우리나라 차 재배의 시초가 되었는데, 이는 같은 해 장보고가 흥덕왕에게 청해진 설치를 건의하여 승인받고 ‘청해진 대사’로 임명된 시기와 맞물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학계에서도 장보고의 해상 무역을 신라 차 문화 도입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한다. 결국 이 무역로를 통한 교류는 차 재배를 넘어 도자 생산의 확대로 이어져 고려청자의 탄생 토대가 되었다. 

이 토대에서 장보고의 해상 무역으로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중국 강서성(江西省) 길주요(吉州窯)의 해무리굽(海霧里) 다완이 유입되어 유통·판매되었을 뿐 아니라 전라남도 강진 청자요(康津靑瓷窯)에 제작 기술까지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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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완은 중국 당∙오대(唐∙五代)의 옥벽저완(玉璧底碗)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굽 지름이 대개 1cm 내외의 넓적한 띠를 형성하며 굽바닥에 해무리 모양이 둘러져 있다 한국에서는 고고학자 최순우 선생이 굽의 띠가 바다 주변 해무리(바다 안개)처럼 보인다고 해서 '해무리굽'이라 명명한 그릇이며, 해상 교류의 중요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와 같이 장보고가 열어놓은 바닷길은 차와 도자 기술의 확산을 앞당겼고, 특히 해무리굽 다완은 한국 찻사발(다완)의 초기 전개에서 상징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후 고려 청자 기법으로 재해석되며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스러운 유약을 통해 한국적 미학을 꽃피웠다. 

다완 계승을 발판으로 조선 중기에 이르러 도자 문화가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년)이 닥치면서 왜군은 당시 전라도 명도공 100여 명을 강제 납치해 일본으로 끌고 가 ‘조선 찻사발’과 ‘막사발’을 제작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미 생산된 조선 전기 막사발까지 모조리 약탈해 갔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도자기의 전쟁’으로 표현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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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조선 전기(15~16세기) 남해안 지역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약탈된 막사발 중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이도(井戸) 다완 가운데, ‘기자에몬 이도(鬼冢右衛門井戸)’가 일본 국보로 지정된 최고 명품이다.

너무 얄밉지 않고 소박한 형태와 질박한 흙빛 미감으로 소성된 이도 다완은 조선 도공의 손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진왜란의 난세 속에서 피어난 이 다완은 한국 도자의 세계적 위상을 증명한다. 조선의 그릇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에 퍼져나간 ‘500년 K-컬처의 전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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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다완 속에는 천 년 바다의 기억이 흐르며, 도공의 손길과 장보고의 교류, 그리고 왜란의 난세까지 품어 한국이 세계와 맞닿았던 역동을 증언한다. 이 한 그릇은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 차 문화를 통해 이어진 정신 교류의 살아 숨쉬는 유산이다.

참고자료: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대외문물교류연구 8』 (해상왕장보고연구회, 2009. 12)/(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장보고와 차 문화 전파』 (저자 김진숙 이송란 조범환, 2010.6)/황상석 저자 『장보고의 글로벌 경형 혁명 p193~203』 (푸른지식, 2017) 

차문화테라피연구원∙운소당 조미란 원장


기사 출처: http://www.g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44588